19세기 말엽 열강의 각축이 한참일 때 조선에는 약 90명의 러시아 군인들과 30명의 민간인 그리고 30명의 러시아 국적 소지 한국인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일과 축일에 러시아 공사 관저에 모여 사제(신부)없이 기도와 찬양으로 성사를 대신하며 생활해 왔으나 종교생활이 실제 생활이었던 그들에게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블랴노프스키 공사는 1897년 1월 3일 본국에 사제 파송을 요청하였고 러시아 정교회가 이를 받아들여 1900년 2월 17일 한국에서의 첫 성찬예배가 거행되었습니다. 그 후 1903년 4월 17일 고종황제께서 기증한 부지(현재 경향신문이 위치하고 있는) 서울 정동에 성당이 건립되어 1967년 현재의 서울 마포 아현동 성당으로 이전하기까지 한국에서의 정교회 활동의 중심이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1904년 1월 27일 러일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러시아가 패하자 선교단도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제는 한국 정교회가 러시아교회라 하여 탄압을 노골화하였고 이로 인하여 교회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극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더욱더 심해져서 성당은 파손되고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폐쇄될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그 때 그리스의 종군신부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안드레아스 신부의 관심과 1975년 소티리오스 신부(현재 한국정교회 대주교)가 선교사로서 부임하여 헌신적인 활동을 하였으며 교인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선교가 꾸준히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